민주·인권·민생경찰의뿌리
- 대한민국 경찰은 '제복입은 시민'으로서, 함께하는 민주경찰·따뜻한 인권경찰·믿음직한 민생경찰로 국민 속에 자리매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 대한민국 경찰의 뿌리인 임시정부 경찰의 초대 경무국장 백범 김 구 선생과, 그 뒤를 이어 나라와 국민을 위해 헌신했던 경찰들의 발자취를 발굴·계승하여 민주·인권 ·민생경찰의 정신으로 삼겠습니다.
전쟁이 터지자 경찰관들은 조국을 지키기 위해 참전했고, 전 경찰의 1/3에 해당하는 17,378명이 죽거나 다쳤다.(사망 · 실종 10,618명 / 부상 6,760명)
6·25 최초의 전사자는 경찰관이었다.(강릉경찰서 전대욱 경사)
1950년 6월 25일 3시경, 정동진 등명해안 초소에서 근무 중이던 전대욱 경사가 북한군의 공격을 받고 사망, 한국전쟁 최초의 전사자로 기록되었다.
태안사 · 함안 · 다부동 전투 등 승전과 공비토벌 전국 184곳에 세워진 경찰충혼탑과 위령비
전쟁 초기 전국의 경찰관들은 적의 공세에 적극적으로 맞섰고, 태안사 · 함안 · 다부동 전투에서는 수많은 희생 끝에 낙동강을 방어했다. 후방에서는 빨치산 소탕에 나서, 1953년 9월 남부군 사령관 이현상을 사살했으며, 1963년 11월에는 최후의 빨치산 정순덕을 생포했다.
조국을 지킨 경찰관 전쟁영웅들
- 조관묵 경감 : 1950년 11월 강원도 양구에서 주민 2천여 명 대피시킨 후 적 4천에 맞서다 동료 30명과 전사
- 김해수 경감 : 1950년 7월 영월 발전소 탈환 위해 교전 중 적 73명 사살하고 전사
- 차일혁 경감 : 1953년 9월 남부군 사령관 사살 등 대표적 경찰 전쟁영웅 *충무무공훈장1 화랑무공훈장5
- 강삼수 경감 : 산청서 유격대 10여 명으로 공비 322명 사살, 61명 생포했던 일명 '지리산 귀신' *충무무공훈장
미 해병도 인정했던 '장진호 전투'의 용맹스런 경찰부대
"그곳에는 훈련되어 군기가 있고 상당한 전투력을 가진 한국 전투경찰 부대가 있었다" - 마틴 러스의 '브레이크 아웃' 중에서
장진호 전투를 다룬 베스트셀러 '브레이크 아웃'과 생정 군인의 증언에 따르면, 한국 전투경찰 소대는 약 40여 명이었으며, 창원에서부터 미 해병대에 배속되어 북진했다 한다. 이들은 중공군에 맞서 기관총 진지를 구축하고 온몸으로 적의 파상공세를 막아내 UN군의 후퇴를 도왔다. 하지만 이들 경찰관의 명단과 행적에 대해서는 현재까지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