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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인권·민생경찰의뿌리

  • 대한민국 경찰은 '제복입은 시민'으로서, 함께하는 민주경찰·따뜻한 인권경찰·믿음직한 민생경찰로 국민 속에 자리매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 대한민국 경찰의 뿌리인 임시정부 경찰의 초대 경무국장 백범 김 구 선생과, 그 뒤를 이어 나라와 국민을 위해 헌신했던 경찰들의 발자취를 발굴·계승하여 민주·인권 ·민생경찰의 정신으로 삼겠습니다.
[웹툰]독립을 위한 헌신, 경찰 혼으로 피어나다
등록일 2019-09-11 00:00:00
부서명 본청 시스템운영팀
조회수 700
독립을 위한 헌신, 경찰 혼으로 피어나다!

독립을 위한 헌신, 경찰 혼으로 피어나다! 제작 : 경찰청 작화 : 이인재 1945년 8월 15일, 조국이 광복되었지만 사회는 극도로 혼란하였고, 우리의 의사와 상관없이 38선의 남북에는 미군과 소련군이 진주하였다. '정부의 전 직원은 추후 명령이 있을 청 때까지 종래의 기능 및 의무 수행을 계속한다' - 미군정 포고령 1호 각종 정당이 난립하는 혼란의 소용돌이 속에서 미 군정은 효율적인 행정 통제만을 위하여 민족 정서는 무시한 채 일제관료 출신들을 그대로 흡수하였다. 그들이 일본인을 위해 훌륭히 업무를 수행했다면 우리를 위해서도 그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을 경찰에서 몰아내는 일은 합리적이지 못하다. 매글린 경찰고문 ※마크 게인,「해방과 미군정 1946, 10-11」, 1986 치안유지와 반공이라는 필요에 의해 일제경찰 출신들도 상당수 한국경찰로 재임용되었는데 미군정 경찰 약 2만 5천명 중 20%에 달하는 5천여 명이 일제경찰 출신이었고 ('46.11.기준) 특히, 경위 이상 간부는 1,157명 중 82%인 949명이 일제경찰 출신이었다. ※ 출처 : '주한미군사' 등 당시 미군정 문서 노덕술 김재열 하판락 이명흠 정기창 최연 박을수 홍순봉 이 과정에서 단순 일제경찰 출신뿐만이 아니라 일제에 적극 부역하며 독립운동가들을 고문·탄압했던 노덕술 등의 악질 친일경찰들도 입직하게 된다. ※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보고서(2009년)에 등재된 일제경찰 출신 반민족행위자 중 한국경찰 재입직자는 총 8명 확인 이들 친일경찰들은 과거에 대한 반성은 커녕 친일청산을 위해 국회가 설치한 '반민족행위특별조사 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무력화시키는데 앞장섰다. 노덕술 등은 반민특위 무산을 위해 1948년 말 반민특위 위원들의 암살을 기도하였고, 명동의 반민특위 사무실 1949년 6월 6일에는 서울중부서장 윤기병 등 40여 명의 경찰들이 반민특위를 습격, 특경대를 해산시키고 조사자료를 파손하는 등 반민특위를 무력화시킴으로써 사실상 친일청산 노력을 무위로 만들었다. 노덕술, 2년 6월 재직 (1946. 1. ~ 1948. 7.) 하판락, 6월 재직 (1946. 4. ~ 1946 9.) 비록 노덕술, 하판락 등이 실제 한국경찰로 재직한 기간은 수개월에서 2년 반 정도에 불과했지만, 이들 대표적 친일경찰들의 악인상은 지금까지도 광복직후 한국경찰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로 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광복 직후 경찰에 투신했던 대부분은 그런 친일경찰과는 거리가 멀었다. 일본인 경찰들을 축출하고 새롭게 한국의 국립 경찰이 창설되면서 수많은 젊은이들이 새 희망을 품고 경찰에 투신하였다. 실제로 전체 2만 5천명 경찰관 중 80%인 2만 명이 일제경찰과는 관련 없는 새로운 한국인들이었다. ※ 출처 : 주한미군사 III 상대적으로 일제경찰 출신이 다수였던 간부급도 1947년 간부후보생 제도 등을 신설해 5년 만에 천여 명의 간부를 배출하는 등 빠른 인적쇄신을 위해 노력하였다. ※내무부치안국,「한국경찰사 III」, 1973 국가공무원법 제5조 (1949.8.12. 제정·시행) '독립운동에 공헌이 있는 자로서 덕망이 있는 자를 공무원에 임명할 때에는 특별전형에 의하여 행할 수 있다.' 또한,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경찰에 투신하였는데, 그들 중 상당수는 경찰간부로 특채되었다. 그리고 이들 중에는 독립운동의 동지들이 함께 경찰 동료가 되는 경우도 있었다. 그 중 남경국립중앙대학 유학생 선후배 사이였던 김용과 이일범, 신영묵이 그 대표적인 경우이다. 나는 조국의 자유와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광복군에 입대하여 생명을 바칠 것을 엄숙히 선서합니다. 김용은 1943년 광복군 제1지대에 입대하여 특수교육 수료 후 소교로 임관, 중국 제3전구 (상해 일대)사령부에 파견되어 상해지구 공작책임자로 활약하였다. 콰앙 특히, 1945년 4월 중국땅 제기(諸誓)와 의조(義鳥)를 잇는 철로를 파괴, 일본군 화물기관차를 탈선시킴으로써 일본군의 보급을 차단하는 쾌거를 올렸고 광복 후에는 상해 주호판사처장으로 임명되어 한국인 일본군 병사들의 안전한 탈출을 이끌기도 하였다. ※ 김용, 「나의 길을 찾아」, 2012; 주호판사처는 현재의 영사관 역할을 했던 임시정부의 기관이었음 김용의 절친 이일범은 비밀결사 한족동맹회의 회장을 맡아 임시정부 특파공작원과 접선하여 일본군 동태 탐사, 초모인원 후송 공작 등의 임무를 수행했다. ※이일범의 아내 정영(1922~2009, 건국훈장 애족장, 1990), 매형 정윤관 (1910~1981, 대통령표창 1977), 아내 정영의 외삼촌 정영호(1924~1994) 모두 독립운동 서훈을 받은 독립운동가 집안임 1944년 10월 남경을 탈출한 후에는 제3전구 사령부 전지공작대원으로 정치부 대적방송선전대에서 대적전단 작성, 방송 실시, 포로 심문 등의 업무를 담당하였다. ※독립운동사 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 제6권, 독립군전투사(하), 1975 광복 후 김용과 이일범은 함께 미군 CIC에서 근무하며 방첩활동을 하였고, 1948년에는 경교장에서 김구 선생의 비밀경호를 담당하기도 하였다. ※ CIC(Counter Intelligence Corps) : 미24군단 산하 정보기관 1951년 7월, 그들은 당시 경찰 최고위직이던 치안국장 바로 아래 계급인 경무관에 나란히 특채되어 각각 치안국 정보수사과장과 교육과장을 역임하며 전쟁 중 혼란스러운 조국의 치안을 유지하는데 핵심적 역할을 했다.

한편, 이일범의 후배로 함께 한족동맹회에서 활동했던 신영묵은 서안에서 광복군 제2지대에 입대하여 국내 진공을 위한 OSS훈련을 수료하였으며, ※ OSS 훈련 - 광복군을 미 전략 사무국 OSS (Office of Strategic Service)에 보내 훈련시킨 후 한반도에 침투시켜 적 후방공작을 담당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한미연합훈련 광복 후에는 '일본군 내 한국인 사병을 훈련시켜 향후 국군의 근간으로 활용한다'는 광복군 지휘부의 방침에 따라 남경참편 (잠정편성) 지대 참모로 임명되어 임무를 수행하였다. ※독립운동사 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 제6권, 독립군전투사 (하), 1975 敎育課長 李一九 1951년, 그는 경감 특채로 경찰에 입직하여 내무부 치안국 교육과에서 근무하였으며 김용, 이일범과 함께 전화(戰禍)에 신음하던 조국의 재건에 힘을 보탰다. 목숨을 걸고 같이 독립운동을 했던 동지들이 함께 경찰이 된 경우는 이들 외에도 더 많이 있었다. 영등포 동대문(현 혜화)·노량진(현 동작) 서장을 역임했던 김세균 총경, 연천 고흥서장을 역임했던 이철영 경감, 김해 부산진서 등에서 근무한 노영준 경위는 모두 일제에 의해 징집되어 평양 47포병부대에 배치됐던 학병 동지들로, 한국인들인 42보병부대가 주도한 사단 폭파 및 학병 항쟁 거사에 동참하기로 결의하고 각자 비밀임무를 수행하였는데 김세균은 부대 간 연락 및 동지 포섭 등의 임무를 맡았고, 이철영은 학병 조직 제2지대장으로 학병 항쟁 계획을 지휘하였으며 노영준은 학병 부대 간 긴밀한 연락 체계 유지를 맡는 등 모두 목숨을 건 학병 의거 계획에 적극 참여하였다. 하지만 이들의 거사계획은 한국인 밀정에 의해 탄로나 전원 체포되었고, 혹독한 고문 끝에 김세균, 이철영, 노영준은 각각 징역 4년, 5년, 8년의 옥고를 치르게 된다. 한편, 독립운동가 출신으로서 간부로 특채된 이들은 이들 뿐만이 아니었다. '일제 때 항시 권총을 휴대하고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자유자재로 출몰하여 일경을 괴롭혔던 대담무쌍한 투사' -'국회 20년' 中 비밀결사 군사주비단에 가입 후 친일 부호들을 대상으로 임시정부와 독립운동단체를 위한 군자금 수합 활동을 벌이다 체포되어 징역 7년 옥고를 치른 노기용 총경 ※ 경감 입직/청송·문경서장, 경북경찰학교장, 고성군수, 제2대 국회의원 (무소속, 합천갑) 일본 도쿄 와세다대학 1927년 일본 도쿄에서 신간회 동경지회 설립에 참여하여 정치문화부 소속 간사로 활동하는 등 독립운동을 하다 일경에 체포되어 조사를 받은 박노수 총경 ※ 감찰관 입직/영주·안동·대구·김천감찰서장 통도사 울산청년동맹을 창립, 청년계몽과 사회 모순 타파를 위해 헌신하고 신간회 울산지회 대표회원을 역임하며, 일제의 정치적·경제적 탄압에 적극 항거했던 조형진 총경 ※ 경감 입직/김포·이천·부산수상(현 부산영도서) 경찰서장, 제7관구경찰청(현 경남청) 부청장, 6·25전쟁 중 납북 이들 독립투사들 또한 광복 후 경찰에 투신하여 조국 치안을 재건하는 데 적극 동참하였다. '견리사의 견위수명' 이익을 보면 의리를 생각하고 나라가 위태로울 때 목숨을 바친다. - 안중근 의사의 좌우명 ※ 위 두 작품은 독립운동가 경찰 박노수 총경(호 야민)이 절친했던 김용 경무관에게 선물한 것임(김용 유족 소장) 조국독립을 위해 목숨을 걸고 일제와 싸우다 광복 후에는 조국 재건을 위해 경찰에 투신하여 한국경찰의 기틀을 세운 독립운동가들... 이들의 숭고한 애국정신은 대한민국 경찰들의 마음 속에 새겨져 영원히 전해질 것이다. 치안국 정보수사과장 경무관 김 용 1943년 광복군 입대 1945년 상해 주호판사처장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  치안국 교육과장 경무관 이일범 1943년 한족동맹회 소속 독립운동 1944년 광복군 입대, 선전공작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  치안국 교육과 경감 신영묵 1943년 한족동맹회 가입 1943년 광복군 입대, OSS 훈련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  영등포 · 동대문서장 연천경찰서 총경 김세균 1944년 일본군 내 학병 집단 항쟁 주도로 5년 선고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  연천경찰서 경감 이철영 1944년 일본군 내 학병 집단 항쟁 주도로 5년 선고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  경남경찰국 경위 노영준  944년 일본군 내 학병 집단 항쟁 주도로 8년 선고 1980년 대통령표창  청송·문경서장 총경 노기용 군자금 모금으로 7년 복역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  경남청 부청장 총경 조형진 1927년 울산청년동맹 활동 중 옥고 1930년 신간회 울산지회 대표 2009년 건국포장  영주 · 대구감찰서장 총경 박노수 1926년 신민부 활동 1927년 신간회 동경지회 설립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  참고 경찰인사기록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국립중앙도서관 대한민국신문아카이브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국사편찬위원회 전자사료관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국사편찬위원회, 「대한민국임시정부자료잡 13」, 교학사, 2006 국사편찬위원회, 『신편한국사50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2002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제6권: 독립군전투사(하)」, 독립유공자사업기금운용위원회, 1975 내무부치안국, 『한국경찰사 II , 한국경찰사편찬위원회, 1973 마크 게인, 『해방과 미군정 1946.10-11」, 까치, 1986 신복룡 편, 「미 군정활동 보고서, Summation of U.S. Military Government activities in Korea Vol.4」, 원주문화사, 1990 김용, 「나의 길을 찾아」, 이화, 2012 조건, 「일제 말기 한인 학병들의 중국지역 일본군 부대 탈출과 항일 투쟁」, 『한국독립운동사연구56』, 2016 경찰청임시정부 100주년기념사업추진팀, '김용 님 후손 인터뷰 녹취록', 2019.4.10. 1 경찰청임시정부 100주년기념사업추진팀, '조형진 님 후손 인터뷰 녹취록', 2019.4.11. 동아일보, 경북사건의 판결, 최고는 노기용에 칠년, 최하는 십개월 언도, 1924.11.7. 영남일보, 군정자문기관으로 도부행정고문 임명, 1945.11.20. 부산신문, 부청장 사임 후임에 조형진 씨, 1948.10.15. 자유민보, 조홍진 씨 울산을구서 출마, 1950.5.6. 동아일보, 양 현직 경무관 위시, 1951.12.18. 동아일보, 대남간첩단사건 일회공판 작일 개정, 1952.3.18. 동아일보, 대남간첩단사건 기소문 개요, 1952.3.20. 동아일보, 서상일씨 피체 국회의원 노기용 씨 외 3명도, 1952.6.30. 경향신문, 대법원서 판결 세칭 대남공작대원, 1955.8.13. 경향신문, 최고 징역 오년 세칭 대남간첩사건 고법 언도, 1958.1.24. 〈이제는 말할 수 있다〉57년만의 증언, 친일경찰 노덕술, MBC, 2002.3.10. 경찰청 임시정부 100주년 기념사업 추진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