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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인권·민생경찰의뿌리

  • 대한민국 경찰은 '제복입은 시민'으로서, 함께하는 민주경찰·따뜻한 인권경찰·믿음직한 민생경찰로 국민 속에 자리매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 대한민국 경찰의 뿌리인 임시정부 경찰의 초대 경무국장 백범 김 구 선생과, 그 뒤를 이어 나라와 국민을 위해 헌신했던 경찰들의 발자취를 발굴·계승하여 민주·인권 ·민생경찰의 정신으로 삼겠습니다.
[웹툰]삼부자 독립운동가 경찰 이야기
등록일 2019-08-10 00:00:00
부서명 본청 시스템운영팀
조회수 696
'임시정부경찰부터 광복 이후 경찰까지
대를 이은 경찰정신'
- 삼부자 독립운동가 경찰 이야기 -
제작: 경찰청 작화 : 이인재

중경 임시정부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서찰이다. 읽어보아라. 조국 독립을 위해 임시정부에서 활약 중인 아버지의 부름을 받은 두 아들, 삼부자의 독립운동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임시정부경찰부터 광복 이후 경찰까지 대를 이은 경찰정신' - 삼부자 독립운동가 경찰 이야기 - 제작 : 경찰청 작화 : 이인재 서찰을 보낸 형제의 아버지 송복덕(1891-1965). 그는 이미 중국에서 조선의용대 소속으로 항일전의 선봉에 서있었고 1942년 조선의용대가 임시정부 광복군 제1지대로 통합되면서 임시정부에 합류하였다. 그는 곧 임시정부 내무부 경위대원으로 임명되어 요인 경호 및 교민 보호 등 임정경찰의 임무를 수행하였는데 장성한 두 아들들도 조국 독립의 동량으로 삼고자 동지 전월성* 을 통해 송병철·송병하 형제를 임시정부가 있는 중경으로 부른 것이다. * 전월성 - 생몰미상, 임시정부 내무부 경위대원, 건국훈장 애족장 형제들은 평소 항일 의식도 남달랐다. 송병철은 주변에 게다(일본식 신발)가 보이면 화를 내며 망가뜨렸고, 송병하는 일본군 입대통지서를 받았지만 일본군에 부역할 수 없다는 이유로 입대를 거부하고 피신하였다. ※송병하 후손 인터뷰 및 송연아,『해남 송병하 선생의 독립운동 녹취본』내용 中 잘 와주었다. 너희도 이제 다 컸으니 나라를 위해 일을 할 때가 되었다. 우선 실력을 길러야 할 때이니 광복군에서 훈련을 받거라. 이렇듯 확고한 항일 정신으로 무장한 형제는 중경에서 부친을 만났고 부친의 권유로 광복군 입대를 결심하였다. 우선 형제는 중경에서 기초 훈련을 받은 뒤 1944년 부양으로 이동, 광복군 제3지대에 나란히 입대하였다. ※김문택,『광복군 김문택 수기』中 림시정부의 연혁 형 송병철 (당시 26세)은 입대 후 한국 독립전선에 필요한 간부 양성, 중국군과의 연합작전 기능의 향상 등을 위해 설치된 한국광복군 간부훈련반(한광반) 교육을 수료하였다. 글씨가 빼어나기도 했던 그는 다시 중경으로 돌아와 임시정부 내무부 총무과에서 근무하며 광복군총사령부를 지원하고 청년 공작원들의 공작 활동을 원조하기도 하였다. 동생 송병하(당시 19세)는 훈련 수료 후 간부로 임관하여 광복군 소대장이 되었고, 훈련교관을 겸임하여 급증하는 신입대원의 교양과 자질 향상을 위한 체계적인 훈련을 실시하였다. 또, 광복군 훈련교본 편찬위원에 임명되어 미국·중국·일본의 훈련 방식의 장점을 가미한 훈련 방식을 고안, 한미 OSS 훈련* 준비에 기여하는 등 형제 모두 독립운동에 열정을 쏟았다. *OSS 훈련 - 광복군을 미 전략 사무국 OSS (Office of Strategic Service) 에 보내 훈련시킨 후 한반도에 침투시켜 적 후방공작을 담당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한미연합훈련. 실제 훈련이 이루어지고 실전에 투입되었으나 국내진공작전 개시 직전 일제의 무조건 항복으로 구체화되지 못함. (국사편찬위원회, 『신편한국사50』전시체제와 민족운동 中) 마침내 1945년 8월 15일, 일제의 강압과 착취 속에 신음하던 동포들에게 광복이 찾아왔지만 임시정부는 안심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재중동포 약 4백만 명의 안전한 귀국이라는 정부로서의 책무를 다해야만 했기 때문이었다. 임정은 우선 광복군 총사령관 지청천으로 하여금 전 병력을 중국 내 일본군 점령지구로 진입시켜 재류 동포들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도록 하였는데, 송병하도 이 당시 귀덕지구 특파부단장으로서 중국 거류 한국인들에 대한 신변보호 임무를 수행하여 국민을 지키는 광복군으로서의 책무를 끝까지 완수하였다. 1946년 2월, 삼부자는 귀국선을 타고 인천항에 도착하여 꿈에 그리던 광복된 고국 땅을 밟게 된다. 그리고 곧 형제는 임시정부경찰로 활약했던 아버지의 뒤를 이어 조국 치안의 주춧돌을 세우고자 나란히 경찰에 투신하게 되는데 1946년, 형 송병철이 먼저 경찰에 입직하게 된다. 그는 청량리운수경찰서, 서울철도경찰대 등을 거치며, 당시 가장 중요한 교통수단이었던 철도에서 발생하는 각종 범죄의 예방과 단속 및 시민의 안전을 위해 헌신하였고 공주경찰서 등에서 근무하며, 민생치안 유지에 기여하다가 1955년 퇴직하였다. 동생 송병하는 형보다 1년 늦은 1947년 경찰에 입직하였으며 1950년 6·25전쟁 이후에는 지리산전투경찰사령부 소속으로 공비 소탕 작전에 참여하였다. 1956. 7. 1. 추암 촛대바위에서 동료들과 함께 정전 후에는 삼척서 경비계, 경찰기동대 등 주로 경비 부서에서 활약하며 전후 지역안정, 치안유지에 헌신하다가 1956년 퇴직하였다. 임시정부경찰 송복덕과 그 두 아들 송병철, 송병하. 임시정부경찰부터 광복 이후 경찰까지, 독립을 위한 헌신을 경찰정신으로 승화시켰던 삼부자들의 이야기는 정의로운 경찰정신의 표상으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경위대원 송복덕 (1891~1965) - 1891. 10. 20. 평북 의주 출생 - 1941 조선의용대 제3지대 활동 및 민족혁명당 참여 - 1942. 4. 한국광복군 제1지대 편입 - 1942. 10. 임시정부 경위대원 임명 - 1944. 한국독립당원 항일활동 - 1965 사망. - 1990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순경 송병철 (1919~1989) - 1919. 12. 9. 평북 의주 출생 - 1944. 5. 광복군 제3지대 입대 - 1944. 5.~10. 한국광복군 간부훈련반 교육수료 - 1944. 10. 임시정부 내무부 총무과 근무 - 1946. 9. 조선운수경찰청 순경입직, 청량리 운수경찰서 근무 - 1955 공주경찰서 근무 - 1955 퇴직 - 1989 사망 - 1990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경사 송병하 (1926~2010) - 1926. 12. 12. 평북 의주 출생 - 1944. 5. 광복군 제3지대 입대 - 1945 광복군 제3지대 제1구대 제2소대장 임명 - 1945 훈련교관 및 훈련교본 편찬위원 - 1945. 8. 귀덕지구 특파부단장 - 1947. 8. 철도운수경찰학교 수료 - 1949. 10. 철도경찰 본대 근무 - 1950 지리산 전투경찰사령부 근무 (6·25전쟁 참전) - 1955. 3. 삼척경찰서 근무 - 1956 퇴직 - 1990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 2010 사망 참고 경찰인사기록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국사편찬위원회 전자사료관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국립중앙도서관 대한민국신문아카이브 국사편찬위원회, 『신편한국사50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2002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제4권 : 임시정부사」, 독립유공자사업기금운용위원회, 1972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제6권 임시정부사(하)」, 독립유공자사업기금운용위원회, 1975 한국광복군 제3지대 사진첩발간위원회, 항일전의 선봉, 2000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광복군 김문택 수기 上,下」, 김문택, 2005 김문택, 「회고 광복군 시기」, 『한국독립운동사연구2, 1988 경찰청임시정부 100주년기념사업추진팀, '송병철님 후손 인터뷰 녹취록', 2019.06.10 경찰청임시정부 100주년기념사업추진팀, '송병하님 후손 인터뷰 녹취록', 2019.07.04 송연아, 해남 송병하 선생의 독립운동 녹취본』, 2008 경찰청 임시정부 100주년 기념사업 추진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