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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인권·민생경찰의뿌리

  • 대한민국 경찰은 '제복입은 시민'으로서, 함께하는 민주경찰·따뜻한 인권경찰·믿음직한 민생경찰로 국민 속에 자리매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 대한민국 경찰의 뿌리인 임시정부 경찰의 초대 경무국장 백범 김 구 선생과, 그 뒤를 이어 나라와 국민을 위해 헌신했던 경찰들의 발자취를 발굴·계승하여 민주·인권 ·민생경찰의 정신으로 삼겠습니다.
[웹툰] 장진호 전투의 경찰영웅들
등록일 2019-06-17 00:00:00
부서명 본청 시스템운영팀
조회수 665

1950년 8월 초 난 장단에서 온 경찰관이요. 전란을 겪고 곳까지 와서 미 해병대에 배속되었소. 장단에서 왔다고~! 동향 사람을 보니 반갑습니다. 난 연백에서 온 이종연 중위라고 합니다. 이종연 통역중위 경상남도 진동리 ※연백군: 현재 황해도 지역, 광복 이후 경기도에 편입되었고, 6·25전쟁 전까지는 남한지역이었다. 2019년 4월 경찰관들이 전투 전문인 해병대 군인들과 함께 싸우면서 주공격을 맡았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것이고, 진짜로 멋있게 싸운 겁니다. 그로부터 69년 후.. 용인 이종연 선생 자택 장진호전투와 경찰영웅들 제작 : 경찰청 작화 : 이인재 조병옥 내무장관 워커 중장 23일 우리 제1기갑연대가 적의 게릴라 습격에 큰 타격을 입었습니다. 한국경찰은 지리를 잘 알고 총기훈련도 되어 있습니다. UN군과 함께 전투를 한다면 분명 큰 도움이 될 겁니다.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자, 7월 1일 UN군이 파병 되고 그 해 8월, 당시 조병옥 내무장관의 요청으로 한국경찰 15,000명이 UN군에 배속되었다. UN군에 배속된 경찰 중에서도 별도로 정예훈련을 받은 경찰관들은 '화랑부대'라는 이름으로 재편된다. 그들은 UN군과 함께 인천상륙작전, 서울탈환, 원산상륙을 거쳐 압록강 부근까지 북진하였다. 한편, 화랑부대 중 미 해병1사단에 배속되어 장진호 전투에 참전한 경찰관들이 있었다. 그들은 8월 초 UN군 미 해병에 배속되어 함안전투, 인천상륙작전을 거쳐 장진호전투에 참여하게 된다. ※ 함안전투에는 UN군과 함께 경남 및 전남·북 경찰 6,800명이 참전 장진호는 함경남도에 위치한 인공호수로, 전투가 있었던 12월은 눈보라가 몰아치고 영하 40도를 오르내리는 혹한의 날씨였다. 미 해병은 9.15. 인천상륙작전, 10. 26. 원산상륙 후 장진호 일대로 진출하였는데, 이때 경찰관들은 미 해병1사단 5연대에 배속되어 함께 전투를 치르게 된다. ※ 장진호전투 : 1950. 11. 27.~12. 11. 장진호 인근에서 벌어진 UN군과 중공군 간의 전투로, 중공군의 진출을 2주간 지연시켜 10만여 명의 피난민을 구출한 흥남철수 작전의 기반이 되었다. 유담리 미 해병 1사단 예하 3개 연대 중 경찰부대를 포함한 2개 연대는 장진호 서쪽의 유담리로 진출하게 되는데, 이때 아군의 수배에 달하는 중공군의 인해전술을 맞이하게된다. 거기 산 위에 해병 있나-!? ... ...느낌이 안 좋아. 1950. 11. 27. 초저녁 장진호 서쪽 유담리, 고요한 적막 속에 폭풍전야의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경찰 부대는 최전방에 진지를 구축해 주시오. 알겠습니다. 저희가 선봉이 되겠습니다! 산비탈 중턱에 진지를 구축한 미 해병1사단 5연대 3대대의 대대장 로버트 태플릿 중령은 한국 경찰관들이 운용하는 기관총 진지를 전진 배치하였다. 중공군이 몰려오고 있다-!! 부우우우우 미 해병1사단 5·7연대 (8천여 명, 경찰부대 포함)는 중공군 3개 사단 (3만 명)의 공격을 막아내며 격렬히 싸웠다. 그들은 중공군의 인해전술이 펼쳐진 첫 전투이자, 장진호 전투의 분수령이 된 유담리 전투에서 중공군의 공세를 성공적으로 저지하였다. 태플릿 중령 지난밤 한국 경찰들의 기관총에 중공군 200여 명이 죽었습니다. 그들의 영웅적 희생으로 지휘본부를 지킬 수 있었네. 한국경찰이 맹활약한 가운데 유담리 전투에서의 성공적 방어는 중공군의 진출을 지연시켜 아군의 성공적인 철수를 가능하게 하였다. '화랑부대가 몰려드는 '엄청난 수의 중공군을 향해 위압적인 기관총세례를 퍼부었고 ... 다음날 아침 우리의 S-2 요원들이 센 바에 따르면 화랑부대의 기관총에 죽은 적군의 수는 200명이 넘었다. 화랑부대는 상대 공격의 예봉을 잡았고, 화랑부대 기관총 대원들의 영웅적인 희생 (4명이 죽고 11명이 다친)은 대대 지휘본부 지역으로 진격하던 '중공군을 확실하게 저지하였다.' Dark Horse Six 경찰부대의 직속상관이었던 미해병 1사단 5연대 3대대장 로버트 태플릿 중령은 한국경찰의 눈부신 활약을 극찬하였다. '50. 11.27. ~ 12.11. 2주간의 혹한 속에서 미 해병과 경찰부대는 중공군의 파죽지세를 뚫고 무사히 흥남에 도착한다. 실제로 너무 추운 날씨 탓에 모두가 발이 얼어붙었고, 군의관들은 진통제가 얼을까 봐 입에 물고 전장을 뛰어다녔다. 크리스마스의 기적! 흥남에 집결한 UN군은 피난민 또한 외면하지 않은 채 12월 12일부터 24일까지 193척의 군함으로 10만명의 피난민과 함께 부산으로 철수에 성공한다. 장진호 전투는 바로 이 기적을 가능하게 한 영웅적 희생이었다. 묻혀 있던 낡은 명부에서 겨우 찾아낸 장진호 전투 참전 경찰관은 겨우 18명 그들 중 상당수는 참전유공자로 등록조차 되어있지 않았다. 장진호 참전경찰 대부분은 장진호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소속 경찰관서에 복귀하여 후방지역 공비토벌 및 전시치안 업무를 담당하였다. 〈유족 증언〉 故길원갑 경감의 장녀 길OO님 '전장에서 돌아온 아버지가 발에 동상이 걸려 양손에 목발을 짚고 들어오시던 모습이 기억납니다.' 故임진하 경사의 배우자 정○○님 '남편은 장진호 전투에서 기관총 사수로 작전을 수행하던 중 중공군의 수류탄 파편을 맞고 부상을 입었습니다.' 故장진환 순경의 여동생 장OO님 '6·25에 참전해서 거의 죽을뻔한 걸 동료들의 부축을 받아 미국 배에 마지막으로 탑승해서 가까스로 살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장진호 전투 경찰영웅들의 숭고한 희생을 기억하고, 그분들의 참된 경찰정신을 계승하겠습니다. -경찰청 - 참고 국제연합군사령부, 유엔종군기장 수여대상자 조사명부』, '57년 내무부 치안국, 『한국경찰사』 2권, '73년 윤장호, 『호국경찰전사』, '95년 군사편찬연구소, 『한국전쟁 中』, '96년 로버트 태플릿, Dark Horse Six』, '02년 대한민국참전경찰유공자회, 『아~ 살아있다! 대한민국 경찰의 혼』, '03년 마틴러스, 『브레이크 아웃』, '04년 군사편찬연구소, 『6·25전쟁 주요전투』, '17년 경찰청 임시정부 100주년 기념사업 추진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