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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인권·민생경찰의뿌리

  • 대한민국 경찰은 '제복입은 시민'으로서, 함께하는 민주경찰·따뜻한 인권경찰·믿음직한 민생경찰로 국민 속에 자리매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 대한민국 경찰의 뿌리인 임시정부 경찰의 초대 경무국장 백범 김 구 선생과, 그 뒤를 이어 나라와 국민을 위해 헌신했던 경찰들의 발자취를 발굴·계승하여 민주·인권 ·민생경찰의 정신으로 삼겠습니다.
[웹툰] 전을생, 조국의 독립을 위해 밀정이 되다
등록일 2019-06-17 00:00:00
부서명 관리자
조회수 1328
타타타탁 휘~~익~
중국 산동성 조현 외곽 지대
을생아!!
형님!
1941년, 형은 중국군으로 동생은 일본군으로, 나라를 되찾기 위해 이국 땅에서 만난 기구한
한국인 형제가 있었다.
조국 독립을 위해 밀정이 되다. -전을생 경사 이야기 -
제작: 경찰청 작화 : 이인재
전을생(1925-2004). 그는 평북 정주 출신으로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했던 아버지와 중국 중앙군에서 항일 운동을 하던 형 전기생의
영향을 받아 일찍이 항일 의식을 키워나갔다.
중국 소재 중학교에서 유학을 마친 그는 장제스가 이끄는
중국 중앙군에서 복무하던 형 전기생의 권유로 1941년,
16살의 어린 나이에 일본군 헌병대 통역이 되었다.
일본군 통역이 되었으나 그의 비밀임무는 따로 있었다. 일본군의 정세를 몰래 탐지하여 중국군에 정보를
제공하는 밀정의 역할이 그것이었다.
그는 중국군 정보원인 왕 모 씨를 통해 형 전기생과 암암리에 접선하였다. 부대 이동 및 무기 상황과 병력 수
등의 군사 기밀을 중국군에 제공하기 위해서였다.
200명이 채 안됩니다.
1943년 2월, 일본군 상사가 자신에게 중국군 병력 파악을 지시하자 이를 실제보다 적게 보고하였고 중국군에 일본군의 공격 계획을 유출하였다.
얼마 후 치러진 전투에서 일본군은 결국 병력 350명이
전사하는 대패를 당하였다.
반격을 노리던 일본군 합동 토벌대는 1943년 10월,
중국 중앙군을 포위하여 총공격을 감행하였다.
이 전투에서 많은 수의 중국군이 포로로 붙잡혔는데
이 때 전을생의 형 전기생이 체포된다.
※전기생 (1919-1945, 1991년 건국훈장 애족장)은 이후 징역 4년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르다가 1945년 광복 직전 옥사하였다.
형이 체포되어 압송되자 신변의 위협을 느낀 전을생은
부대를 탈출하여 고향 정주로 향했다.
정주에 도착한 후, 뜻이 통하는 동지였던 강준근, 백기헌, 김인갑, 강영근 등과 같이 비밀결사 애국단을 조직,
항일투쟁을 계속하였고
1945년 2월에는 정주군 옥천면에 있던 일본 신사 및
시설물, 집기 등을 파괴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신사 사건 이후 중국으로 피신하던 도중 동지였던 김인갑의 밀고를 받은 일경에게 체포되어 신의주로
압송되었고
피고인 전을생을 징역 단기 1년 6월, 장기 3년형에 처한다.
미성년자였던 전을생은 불경죄로 징역 단기 1년 6월, 장기 3년형을 선고 받고 김천형무소에 수감되어
옥고를 치렀다.
1945년 8월 15일, 광복의 기쁨 속에서 석방된 전을생은
다시 고향인 평북 정주로 돌아갔으나
YOU ARE NOW CROSSING
38TH PARALLEL
US SOUTH
1946년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가 단행한 무상몰수 무상분배의 토지개혁으로 정주 지역의 부호였던 전을생
일가는 쫓겨나듯 월남하여 서울에 정착하였다.
독립된 조국의 치안 유지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마침 남대문경찰서에서 근무하고 있던 큰아버지의 권유로
1947년 10월 경찰에 투신하였다.
이후 그는 당시 선호부서였던 정보 · 사찰계가 아닌 파출소, 형사 등 주로 일선 부서에서 활약하며 민생치안
유지에 기여하였고, 약 29년 간 봉직 후
1975년 12월 퇴직하였다.
16세 어린 나이, 성인 못지 않은 담력과 용기로 적진에 몸을 던져 밀정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던 전을생 경사는
형님...
형님께서 살아계셨으면
좋았을
것을..
나라를 위해 목숨 걸고 항일 활동을 한 공로가 인정되어 1968년 3월, 이미 고인이 된 형 전기생과 함께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으로 변경)
※ 독립유공자 전을생 경사의 대통령 표창 수상 소식을 보도한
당시 동아일보 기사 1968. 2. 29.
암울한 시대, 조국 광복을 위해 목숨을 걸고 밀정을 했던 용기와
국가와 국민을 위한 희생정신은 우리가 기억해야 할 참된 경찰정신이다.
경사 전을생
(1925~2004)
- 1925. 12. 18. 평북 청주 출생
- 1941. 8. 일본군 헌병대 통역으로 중국군에 복무 중이던 형 전기생에게 군사 기밀을 제공, 일본군에 막대한 군사상 타격
- 1943. 10. 일본군 반격 및 형 전기생 체포되자 일본군 탈출, 고향에서 애국단 조직
- 1945. 2. 일본신사 파괴, 불경죄로 단기 1년 6개월, 장기 3년 선고되어 복역 중 광복을 맞이
- 1947. 10. 경찰(순경 공채) 입직
- 1968. 3. 독립유공 대통령 표창
- 1968. 3. 경사 특진
- 1975. 12. 퇴직 (총28년 11개월 재직)
- 1990. 건국훈장 애족장
참고
경찰인사기록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D/B
국립중앙도서관 대한민국 신문 아카이브 내무부치안국, 『한국경찰사,2권, 1973
동아일보, '독립유공자로 표창받은 종로서 전을생 형사', 1968. 2. 29.
경향신문, '독립유공 두 순경 특진', 1968. 3. 12.
경찰청 임시정부100주년기념사업추진팀, '전을생님 후손
인터뷰 녹취록', 2019. 2. 11.
경찰청 임시정부 100주년 기념사업 추진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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