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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인권·민생경찰의뿌리

  • 대한민국 경찰은 '제복입은 시민'으로서, 함께하는 민주경찰·따뜻한 인권경찰·믿음직한 민생경찰로 국민 속에 자리매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 대한민국 경찰의 뿌리인 임시정부 경찰의 초대 경무국장 백범 김 구 선생과, 그 뒤를 이어 나라와 국민을 위해 헌신했던 경찰들의 발자취를 발굴·계승하여 민주·인권 ·민생경찰의 정신으로 삼겠습니다.
[영상] 장진호 전투의 경찰 영웅들
등록일 2019-06-07 00:00:00
부서명 본청 시스템운영팀
조회수 1170

 

경남지방경찰청 수장고에서 낡은 책 하나가 발견됐다
            3,800명의 6.25 당시 유엔군 배속 경찰관들에게 수여된
            "유엔종군기장"
            그리고 그 중에서도 눈에 띄는 한 단어
            "장진호"
            6.25 전쟁 3대 구국의 전투 중 하나인 장진호 전투
            1950년 11월부터 12월까지 북한 함경남도 장진호 지역에서
            미군이 주축이 된 유엔군과 중공군 사이에 벌어진
            역사상 가장 처절한 전투였다고 알려져 있다.
            인천상륙작전 이후 북진하던 유엔군이
            10배에 달하는 중공군에 밀려 후퇴하였지만,
            중공군의 엄청난 공세를 저지하여 피난민 10만명의 생명을 살린
            홍남철수를 가능하게 했던 전투였다
            그런 장진호 전투와 한국경찰은 어떤 관계가 있었던 것일까
            1950년 6월 25일 6.25전쟁이 발발하자
            전국 4만8천명의 경찰관들은 제대로 된 전투장비도 없이
            탱크를 앞세운 북한의 정규군에 맞서 전장으로 나섰고
            전쟁 초기 노도와 같은 적의 공세를 저지하며
            결사항전으로 맞섰다
            후퇴에 후퇴를 거듭하며 집결한 낙동강방어선에서는
            전남.전북.경남 6,800명의 경찰들이 함안지구를 지켜냈고
            다부동 전투에서는 국군, 유엔군과 함께 승리하였다
            서울수복 이후에는 또 후방을 교란하는 공비토벌에 주력하였다
            그렇게 경찰은 6.25전쟁에 적극 참전하여
            무려 1만명의 경찰관이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쳤고
            개전 당시 전 경찰관의 1/3에 해당하는 1만 7천명이 죽거나 다쳤다
            그리고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또 다른 경찰들의 이야기
            변변한 무장도 없이 싸워야 했던 경찰관들은 
            1950년 8월 조병옥 내무장관의 요청으로
            1만 5천명의  경찰관들이 유엔군에 배속되어 함께 전쟁을 하게 된다
            그렇게 한국의 경찰들은
            낮선 이국땅에서 유엔군이 전쟁을 원활히 수행하는데 큰 역할을 한다
            그리고 그 중 일부 경찰들은 유엔군에게 별도로 특별훈련을 받고
            '화랑부대'라는 이름으로 재편된다
            미 해병에게 기관총 운용 특별훈련을 받고있는 경찰관들
            화랑부대는 인천상륙작전, 서울수복작전에 함께 참전하고
            원산 상륙 등 유엔군과 함께 압록강 부근까지 북진하였다
            그 중에서도 미 해병 1사단에 배속된 경찰부대는
            미 해병들과 함께 장진호 전투에 참전하는데
            "용광로 같은 그 전초에는 미 해병에 의해 
            훈련된, 군기가 있고 상당한 전투력을 가진 
            한국경찰 기관총 부대가 있었다" 
            - 마틴 러스, 브레이크 아웃 -
            일제강점기 때 만들어진 인공호수인 장진호 지역은
            눈보라가 몰아치고 영하 40도를 오르내리는
            혹한의 협곡지대
            경찰 화랑부대가 배속된 미 해병 1사단 5연대 3대대는
            11월 27일 장진호 유담리에서 중공군의 인해전술을 맞이하게 된다
            "화랑부대가 몰려드는 엄청난 수의 중공군을
            향해 위압적인 기관총 세례를 발포 하였고...
            화랑부대의 기관총에 죽은 적군들의 수는
            200명이 넘었다.
            화랑부대는 상대 공격의 예봉을 잡았고,
            화랑부대 기관총 대원들의 영웅적인 희생은
            대대 지휘본부 지역으로 진격하던 중공군을
            확실하게 저지하였다."
            - 미 해병 대대장 로버트 태플릿 수기 '다크호스식스' -
            당시 미 해병 통역장교 이종연 변호사
            미 해병 사단이 여기까지 왔습니다
            KNP(Korea National Police)... 경찰이 여기(유담리) 있었습니다
            이종연 (91세) 장진호 전투 당시 통역 장교
            오합지졸이 아니었구요 이 사람들은
            아주 괜찮은 병사들이었습니다
            자기 부모형제들 다 인민군한테 총살당했을거고
            이 사람들(경찰)은 정신으로 싸우는 사람들이에요
            경찰이 진짜로 멋있게 싸운겁니다
            중공군의 공세를 저지한 유담리 전투의 성공적인 방어는
            아군의 성공적인 철수를 가능하게 하였고
            홍남부두에서 수많은 피난민들을 구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
            당시 세계 최강의 부대로 자부하던 미 해병까지 극찬을 한 장진호의 한국경찰들
            하지만 이제껏 그들은 이름도, 전공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었다
            묻혀있던 낡은 명부에서 겨우 찾아낸 18명의 경찰 영웅들
            그들 중 상당수는 참전 유공자로 등록조차 되어 있지 않다
            역사는 그들을 기억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들 이외에도
            당시 장진호에서 이미 전사한 또 다른 영웅들은
            그 차가운 땅속에 이름도 없이 잠들어 있을 것이다
            우리는
            쉽게 조국을 말하고 애국을 말하지만
            자신의 목숨을 바쳐 후손들의 평화로운 삶을 지켜 준
            선배 영웅들의 희생을 너무도 쉽게 지나쳤던 것은 아닐까
            오늘의 그대여!
            가슴 속 한줄기 뜨거움이 있다면
            눈을 들어 구국의 경찰역사를 바라보라
            그들의 영웅적 이야기를 기억하라
            경찰청
            임시정부100주년기념사업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