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인권·민생경찰의뿌리
- 대한민국 경찰은 '제복입은 시민'으로서, 함께하는 민주경찰·따뜻한 인권경찰·믿음직한 민생경찰로 국민 속에 자리매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 대한민국 경찰의 뿌리인 임시정부 경찰의 초대 경무국장 백범 김 구 선생과, 그 뒤를 이어 나라와 국민을 위해 헌신했던 경찰들의 발자취를 발굴·계승하여 민주·인권 ·민생경찰의 정신으로 삼겠습니다.
최천 경무관 (1900~19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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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이력 | 제주경찰청장 (1948) |
인물소개 | 3선 국회의원이 된 독립운동가 출신 경찰관 |
서훈 | 건국훈장 애족장 |
![]() ○ 생애·이력(총 재직기간 미상)
해방 후 경찰에 투신하여 경기도 인천경찰서장(’46.12.~’48.3.), 제주도경찰청장(’48.4~’48.6.), 경남경찰국장(’50.7~’50.11.)을 역임하였다. 여순사건 당시 경비사령관이었으며 경남경찰국장 재직시에는 6.25에 참전하였다. 1954년부터 1961년까지 민주국민당 및 민주당 소속으로 3선의 국회의원을 지냈다. . ○ 독립운동 경력
이에 격분한 최천은 박봉삼(朴奉杉)·박태근(朴泰根)·박중한(朴仲漢) 등과 함께 6백여명의 군중을 규합하여 김기정 징토시민대회(懲討市民大會)를 열었다. 징토대회에서는 김기정의 친일발언 사실을 규탄하고 공동절교를 선언하며 일체의 공직에서 사퇴할 것을 요구하였다. 그는 이 일로 피체되어 1927년 10월 부산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형을 언도받았으나 불복·상소하여 1928년 5월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6월, 집행유예 3년형을 언도받았다.
1931년 5월 16일 신간회 제2회 전체대회에서 중앙집행위원으로 선임되어 동회의 해소를 주관하였다. 1942년 2월에는 박영근(朴英根) 등 8명의 동지와 함께 항일운동의 방안을 모색하던 중 피체되어 징역 4월형을 언도받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