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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인권·민생경찰의뿌리

  • 대한민국 경찰은 '제복입은 시민'으로서, 함께하는 민주경찰·따뜻한 인권경찰·믿음직한 민생경찰로 국민 속에 자리매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 대한민국 경찰의 뿌리인 임시정부 경찰의 초대 경무국장 백범 김 구 선생과, 그 뒤를 이어 나라와 국민을 위해 헌신했던 경찰들의 발자취를 발굴·계승하여 민주·인권 ·민생경찰의 정신으로 삼겠습니다.
최천호(崔天浩) 1900~1989
경찰이력 의경대
인물소개 최초 교민단 의경대원, 상해 동포 치안을 책임지다
서훈 건국훈장 독립장
최천호(崔天浩) 1900~1989

평북 의주(義州) 출신,

1919년 3·1독립운동이 전국적으로 발발하자 이에 참여하여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이어 만주 로 건너간 그는 오동진(吳東振)을 단장으로 하는 독립운동 단체인 광제청년단(廣濟靑年團)에 가입하여 활약하였다.

그리고 1915년 5월 18일, 독립운동자금을 모금하기 위하여 단원인 김광진·고학운(高學運)과 같이

의주군 가산면 도금동(都琴洞)의 김준석(金俊碩)에게 일금 31원을 모금하였으며, 국내항일 운동도 전개하였다.


  이후 다시 상해(上海)로 가서 1922년 10월 김구(金九)·여운형(呂運亨) 등이 결성한 한국노병회(韓國勞兵會)에 가입하였다.

그는 한국노병회의 제7차 이사회(第七次理事會)에서 특별회원으로 선임되기도 하였다.

그는 1923년 12월 임시정부 교민단 의경대원으로 임명되어 상해지역 한인동포 보호와 일본 밀정 처단의 임무를 수행하였으며,

1924년 6월에는 나석주·장덕진 등과 함께 임시정부(臨時政府) 경무원(警務員)으로 임명되어 활약하였다.

 
  그 후 독립운동계의 선전기관인 상해 〈독립신문(獨立新聞)〉의 주간(主幹)으로 활약하였다.

또한 상해의 의열단(義烈團)에 가입하여, 1926년 말경 이화익(李化翼)과 함께 재등실 총독(齋藤實總督)을 주살하고자 폭탄을 갖고

국내로 들어왔으나 나석주(羅錫疇)의 거사로 경비가 매우 엄중하여 실현치 못하였다.
그는 다시 만주를 거쳐 북경에서 활약하다가 일경에 피체되어 신의주지방법원에서 5년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