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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인권·민생경찰의뿌리

  • 대한민국 경찰은 '제복입은 시민'으로서, 함께하는 민주경찰·따뜻한 인권경찰·믿음직한 민생경찰로 국민 속에 자리매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 대한민국 경찰의 뿌리인 임시정부 경찰의 초대 경무국장 백범 김 구 선생과, 그 뒤를 이어 나라와 국민을 위해 헌신했던 경찰들의 발자취를 발굴·계승하여 민주·인권 ·민생경찰의 정신으로 삼겠습니다.
유상근(柳相根) 1910~1945
경찰이력 의경대
인물소개 청년투사는 끝내 조국의 광복을 보지 못하였다
서훈 건국훈장 독립장
유상근(柳相根) 1910~1945

  1930년 상해로 망명하여 임시정부 국무위원인 백범 김구를 만났으며,

백범의 소개로 영국인 경영의 버스회사의 검표원으로 생활 하면서 자주 백범을 찾아 독립운동의 방략을 듣고 헌신·노력할 것을 다짐하였다.


  그는 또한 인삼행상으로 광동(廣東)·홍콩(香港) 등지를 두루 다니기도 하였으며

1932년 봄에 다시 상해로 돌아가 백범이 단장으로 있던 한국 교민단(僑民團)의 의경대원(義警隊員)으로 활동하게 되었다.


  한편 이즈음 중국이 일본의 만주침략 행위를 국제연맹에 제소(提訴)하고,

국제연맹에서 그해 봄 만주에 조사단을 파견하자, 백범이 이끄는 한인애국단(韓人愛國團)은 본국과 대련에 단원을 파견하여

조사단이 보는 앞에서 일제 고관들을 폭살함으로써 우리의 독립의지를 대내외에 천명하기로 결의하고 유상근 의사를 그 실행요원으로 선발하였다.

  그는 5월 4일 상해를 떠나 대련으로 가서 아옥정(兒玉町)에 있는 만철(滿鐵) 기숙사 동포의 방에 은거하면서

연락책임을 맡은 최흥식(崔興植), 무기 반입 등의 책임을 맡은 이성원(李盛元)·이성발(李盛發) 등과 비밀리에 연락을 취하였다.

하지만 같은 달 24일 거사를 이틀 앞두고 대련우체국에서의 비밀 전문(電文)이 단서가 되어

최흥식이 체포되고 유상근 의사와 이성원·이성발 등도 차례로 체포되었다.


  그는 관동청(關東廳) 재판소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르던 중 2차 세계대전의 발발과 함께 여순(旅順) 감옥으로 이감되어 무려 13년간의 옥고를 치렀다.

그러다가 1945년 8월 14일, 옥중에서 일제에 의해 참살을 당하여 순국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