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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인권·민생경찰의뿌리

  • 대한민국 경찰은 '제복입은 시민'으로서, 함께하는 민주경찰·따뜻한 인권경찰·믿음직한 민생경찰로 국민 속에 자리매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 대한민국 경찰의 뿌리인 임시정부 경찰의 초대 경무국장 백범 김 구 선생과, 그 뒤를 이어 나라와 국민을 위해 헌신했던 경찰들의 발자취를 발굴·계승하여 민주·인권 ·민생경찰의 정신으로 삼겠습니다.
김석(金晳) 1910~1983
경찰이력 의경대
인물소개 윤봉길 의사의 거사를 배후 지원하다
서훈 건국훈장 독립장
김석(金晳) 1910~1983

  전라남도 함평군(咸平郡) 출생,

국무위원인 작은아버지 김철(金徹)의 슬하에서 성장하였다. 1928년 1월  일본 와세다 대학에 유학한 후,

1931년 7월에 목포를 경유해 중국 상해에 도착하였다.
 그리고, 같은 해 9월 상해의 법정대학 정치과에 입학하여 재학 중 김구 등이 조직한 대한교민단(大韓僑民團)에 서기로 취임하였다. 


  1932년 1월 일제의 침략세력의 소멸, 한국청년의 훈련을 통한 혁명역량 총집중 등을 강령으로 상해한인청년당(上海韓人靑年黨)을 조직하였다.
또한, 그는 임시정부 산하 대한교민단의 치안조직인 의경대 요인으로 활동하였는데

1932년 4월 29일 상 윤봉길 의사의 홍구공원(虹口公園) 투탄의거를 후방에서 지원하고,

이덕주·유진만의 조선총독 암살 기도 의거,

유상근·최흥식의 일본 관동군사령관과 남만철도 총재 암살을 기도 의거를 지원하였다. 


  이후 윤봉길 의거 지원 용의자로 일경에 체포되었으나,

임시정부를 중심으로한 독립운동 진영의 적극적인 외교전과

프랑스·일본간 외교절차상의 문제로 일경과 프랑스 총영사관 간의 분규가 발생하면서 곧 석방되었다.

 

  석방 후, 그는 1926년에 조직된 무력 의열단체인 병인의용대(丙寅義勇隊)를 재정비하기 위하여 맹렬한 활동을 전개하던 중 1933년 11월 22일 상해에서 다시 일경에 검거되었다.

그는 국내로 압송되어 1934년 12월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5년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