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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인권·민생경찰의뿌리

  • 대한민국 경찰은 '제복입은 시민'으로서, 함께하는 민주경찰·따뜻한 인권경찰·믿음직한 민생경찰로 국민 속에 자리매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 대한민국 경찰의 뿌리인 임시정부 경찰의 초대 경무국장 백범 김 구 선생과, 그 뒤를 이어 나라와 국민을 위해 헌신했던 경찰들의 발자취를 발굴·계승하여 민주·인권 ·민생경찰의 정신으로 삼겠습니다.
나석주(羅錫疇) 1892~1926
경찰이력 경무국원 및 경무국장
인물소개 식민수탈의 심장에 폭탄을 던지다
서훈 건국훈장 대통령장
나석주(羅錫疇) 1892~1926

  1892년 황해도 재령에서 출생,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국내에서 상해 임시정부에 군자금을 조달하는 한편,

결사대를 조직하여 평산군 상월면 주재소 일경과 상월면장을 사살하고 다시 안악군 친일파 부호를 사살한 후 1920년 상해로 망명하였다. 


 그는 1924. 6. 8. 임시정부 경무국 경호국원으로 임명된다. (일본 외무성 비밀문서에는 나석주 의사가 의경대원으로 활동하였다는 기록도 남아있다.

또한 같은 문서에 따르면 나석주 의사가 경무국장으로 재직하였다는 기록도 있으나, 이에 대하여는 추가 확인을 요한다.)


  이후 활동지역을 상해에서 천진(天津)로 이동, 의열단에 가입하게 된 그는 1926년 유림 독립운동 진영의 거두 김창숙 선생으로부터

조국의 강토와 경제를 착취하는 동양척식회사와 조선은행 식산은행 등을 폭파하여 일제의 착취로부터 구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국내로 잠입하여 1926. 12. 28. 식산은행과 동양척식회사에 폭탄을 던졌다.

폭탄은 터지지 않았으나, 그는 일제 경찰과 교전을 벌여 일경 7명에게 사상을 입히고, “나는 조국의 자유를 위해 투쟁했다.” “2천만 민중아, 분투하여 쉬지 말라.”는

민족을 향한 외침을 남기고 권총으로 자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