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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경찰

함정수사 어디까지 가능한가?
등록일 2018-07-11 00:00:00
부서명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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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인권재판소 판결 읽기 함정 수사 어디까지 가능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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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레아스 푸르히트(Andreas Furcht)는 마약 거래 혐의로 체포되어 유죄판결을 선고받은 독일인이다. 독일 비밀경찰이 마약 밀매 용의자들 을 수사하기 위해 푸르히트에게 접근하며 사건이 발생했다. 푸르히트가 이전에 마약거래 일을 했던 건 아니다. 마약 관련 전과도 없었다. 푸르히트는 용의자 중 한 명과 친분이 있었고, 독일 경찰은 용의자들과 푸르히트의 관계를 이용하려 했다. 독일 경찰은 담배 밀수에 관심이 있는 것처럼 접근해 푸르히트에게 마약 매수를 부탁했다. 푸르히트는 마약 밀매에 관여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지만, 독일 경찰은 푸르히트를 안심시키면서 마약 구매를 종용했다. 푸르히트는 수수료를 받으면서 마약 구매에 관여하게 되었다.
결국 푸르히트는 마약 거래 혐의로 체포되어 실형을 선고받았다. 수사기 관의 교사로 인해 죄를 저지르게 되었다는 사유로 형이 감경되었지만, 실형을 피할 수는 없었다. 푸르히트는 함정 수사로 말미암아 범죄자가 되고 처벌까지 받게 되자 유럽인권재판소(European Court of Human Rights)에 제소했다. 유럽인권협약(The Convention for the Protection of Human Rights and Fundamental Freedoms) 제6조에서 정하는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당했다는 이유로 유럽인권재판소에 제소한 것이다.
[푸르히트 v. Germany, App no. 54648/09(ECtHR, 23 October 2014]
적법 절차 vs 범죄 교사 행위
유럽인권재판소는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침해되었다고 판결했다. 비밀경찰이 사용한 수단은 범죄행위에 대한 소극적인 수사 차원을 넘어 섰고, 범죄 교사 행위에 이르렀다는 점을 인정했다. 푸르히트가 마약 관련 일을 하지 않았기에 당연히 전과도 없었다. 더구나 비밀경찰에게 마약 구매에 관여하고 싶지 않다는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그럼에도 비밀경찰은 계속해서 푸르히트를 접촉하고 설득해서 마약 거래에 연루 되도록 했다. 비밀경찰의 수사 방식은 적법한 수사의 한계를 넘어선 것 으로 평가됐다.
유럽인권재판소는, 위법 수사가 인정되어서 형이 감경되었다고 하더라 도 공정한 권리를 침해했다는 사실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형을 감경하는 정도로는 인권협약 위반을 피할 수 없다고 보았다. 함정 수사로 얻은 증거는 아예 배제되었어야 했다. 그럼에도 이 사건에서 수사관의 교사로 생긴 증거가 유죄의 근거로 인정됐다. 피고인 푸르히 트에게는 충분한 구제 수단이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이 사건은 수사의 상당성에 대한 기준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애초 푸르히트는 마약 거래를 할 의사가 없었다. 거절 의사를 표하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수사관이 범죄로 나아가도록 추동했다는 점에서 수사의 상당성을 넘어선 것이다.
마약사범이나 인신매매, 아동 성매매 등과 같이 중대한 범죄임에도 은밀하게 행해져 범인을 검거하기 어려운 경우에 함정 수사 기법이 활용되기도 한다. 범인을 검거하는 게 아무리 긴요한 일이라고 해도 수사는 적법해야 하고, 상당한 범위 내에서 행해질 수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유럽인권재판소가 재확인했다.
범의 유발은 위법한 함정 수사
우리 대법원도 함정 수사의 위법성을 지적한 바 있다. 본래 범의를 가지지 않은 자에 대해 수사기관이 사술이나 계략 등을 써서 범의를 유발하게 해 범죄인을 검거하는 함정 수사는 위법하다고 판단한다. 다만 대법원이 구체적인 사건에서 위법한 함정 수사에 해당하는지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언급하는 요소가 그 자체로 명확한 건 아니다. 대법원은, 해당 범죄의 종류와 성질, 유인자의 지위와 역할, 유인의 경위와 방법, 유인에 따른 피유인자의 반응, 피유인자의 처벌 전력 및 유인행위 자체의 위법성 등을 종합해 판단해야 한다고 한다. (대법원 2013. 3. 28. 선고 2013도1473 판결 등)
더 구체적으로 보면, 수사기관과 직접 관련 있는 유인자가 피유인자와의 개인적인 친밀관계를 이용해 피유인자의 동정심이나 감정에 호소하거 나, 금전적·심리적 압박이나 위협 등을 가하거나, 거절하기 힘든 유혹을 하거나, 또는 범행 방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범행에 사용될 금전까지 제공하는 등으로 과도하게 개입함으로써 피유인자로 하여금 범의를 일으키게 하는 것은 위법한 함정 수사에 해당해 허용되지 않는 다고 본다.
다만 위법성이 부정되는 사례도 더러 있다. 대법원은, 유인자가 수사기 관과 직접적인 관련을 맺지 않은 상태에서 피유인자를 상대로 단순히 수차례 반복적으로 범행을 부탁했을 뿐 수사기관이 사술이나 계략 등을 사용했다고 볼 수 없는 경우는, 설령 그로 인해 피유인자의 범의가 유발되 었다 하더라도 위법한 함정 수사가 아니라고 판단한다.
(대법원 2007. 7. 12. 선고 2006도2339 판결) (대법원 2007. 11. 29. 선고 2007도7680 판결 등 참조)
나아가 처음부터 범의를 가진 자에 대해 범행의 기회를 주거나 범행을 용이하게 한 것에 불과한 경우에는 위법한 함정 수사가 아니라는 입장이다.
(대법원 1983. 4. 12. 선고 82도2433 판결)
만일 위법한 함정 수사로 판정되면 공소 제기는 효력을 지닐 수 없다. 대법원은 위법한 함정 수사에 기한 공소 제기는 그 절차가 법률의 규정을 위반해 무효라고 정면으로 판시하고 있다.
(대법원 2005. 10. 28. 선고 2005도 1247 판결 참조)
이와 같은 우리 대법원의 기준에 비춰보더라도 독일 비밀경찰의 함정 수사는 인권침해라는 판단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푸르히트는 애초 마약거래를 할 의사가 없었는데, 수사기관이 직접 유인했다. 수수료를 제공하겠다며 푸르히트를 유혹했고, 푸르히트와 용의자가 친밀한 관계를 이용했다. 이러한 수사기관의 개입은 이미 범의가 있는 자에 대해서 범행 기회를 부여하거나 범행을 쉽게 한 것에 불과하다고 치부할 수 없다. 수사기관이 적극적으로 범의를 유발한 것이다.
우리 대법원이 제시하는 기준에 따르더라도 푸르히트에 대한 공소 제기는 무효가 될 것이다. 단지 양형에서 감형 요소로 삼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위법한 수사로 말미암아 무효인 공소 제기로 재판을 받는다면, 공정한 재판을 받을 인권에 대한 중대한 침해가 된다.
박성철 님은 호사 법무법인 지평에서 일하고 있다.
국가인권위 ‘인권’ 웹진 에서
사람을 먼저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