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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경찰

두근두근 인권으로 in(인권소식지 1월호)
등록일 2020-05-01 16:18:27
부서명 본청 감사 인권보호 인권보호
조회수 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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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근두근 인권으로 in January 1 2020 @evie-s / unsplash 경찰청 인권센터처음으로 하늘을 만나는 어린새처럼 처음으로 땅을 밟고 일어서는 새싹처럼 우리는 하루가 저무는 저녁무렵에도 아침처럼 새봄처럼 처음으로 다시 새 날을 시작하고 있다. 신영복, '처음처럼'에서 @dan-dealmeida / unsplash人 사람 X 인권 경찰 국민의 경종이 되소셔  박원식 인권보호계장 지난 1월 13일 수사권조정 관련 핵심법안인 형사소송법과 검찰청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검찰청법이 1948년에 형사소송법은 1952년에 각 제정되었으니 민주적·분권적 형 사사법 체계에 부합하는 수사구조개혁 논의가 입법적 결실을 맺기까지 강산이 일곱 번이나 변한 셈이다.  일제 강점기에 탄생한 검사 지배형 형사사법구조는 군사정권 집권기를 거치며 검사의 독점적 영 장청구권이 헌법에 명문화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당시 확립된 형사사법체계 는 전세계적으로 유례없이 막강한 검찰을 만들었고 검찰의 독점적 권력에 의한 폐해는 수십년 간 많은 부작용을 낳았다.  경찰은 검찰 독점 시스템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한 과정을 거치며 검찰과 협상을 이어갔 지만 고비마다 대립과 갈등이 표출되었고, 기관 간 밥그릇 싸움으로 오해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2020년의 시작과 함께 ‘검찰개혁'이라는 큰 물살이 모든 지엽적 논란을 집어삼 키며 수사구조개혁 법안이 국회를 통과한 것이다. 이번 결과로 경찰은 독자적 수사권과 함께 검사와 수평적 협력자로서의 지위를 확보했고, 검찰은 수사지휘권을 내려놓고 조서의 증거능 력에 대한 특권도 내려놓게 되었다. 자, 그렇다면 경찰이 승자, 검찰은 패자일까? 경찰은 수 사권을 얻어 이득을 본 것이고 검찰은 손해를 본 것일까?  얼핏 수사권 조정은 권한을 누가 더 많이 갖느냐, 덜 갖느냐의 문제처럼 보이지만 핵심은 전혀 다른 곳에 있다. 수사권 문제의 핵심은 '인권'이다. 형사사법 권력, 특히 수사권의 행사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제한하는 국가의 대표적인 침익적 권한이며 잘못된 수사권 행사로 인한 폐해는 크고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심대하다. 따라서 수사권의 발동과 정도는 제한적이고 보충적이며 최소에 이르러야 한다는 것이 헌법의 정신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수사권이 누구에 의해, 어떤 방식으로 행사되며 어떻게 견제를 받는지, 어떤 방식이 국민의 인권보호에 더 적합한지를 살펴봐야 한다. 국민으로부터 부여된 권한의 비정 상적인 행사(불행사)는 국민의 안전을 보호하지 못하고, 권한의 남용은 인권을 침해한다. 주권자인 국민 중심이 아닌 조직 중심의 사법체계가 작동되는 것을 방지하고 국민의 인권과 편익을 중심에 두고 새로운 형사사법체계를 재편하는 것이 수사권 조정의 핵심이다.  함께하는 인권경찰@bill-oxford / unsplash 경찰이 잘해서 권한을 얻은 것처럼 착각해서는 안된다. 검찰개혁의 명분에서 시작된 작금의 상황이 언제까지나 지속되지 않을 것이다. 검찰도 비난과 개혁의 대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개 혁의 몸부림을 치지 않을 수 없다. 국민의 입장에서 보면 경찰은 권력 남용의 위험성이 더 커진 것이고 수사권 조정 이후에도 변하는 것이 없다면 경찰 또한 개혁의 대상이 될 것이다.  수사권 조정은 미래로 나아가고자 하는 경찰에게 희망적이다. 하지만 막중한 책임도 뒤따름을 명심해야 한다. 잘못 끼워진 단추를 이제서야 제대로 고쳐 끼운 만큼 다시는 같은 역사를 되풀 이하지 않도록 경찰 스스로 부단히 개혁해야 한다.  공정하고 정의로운 수사를 위해 탄탄한 역량은 기본 이고 더 나아가 인권보호를 위한 최적의 시스템을 갖 추어야 한다. 현장 수사관들의 인권 의식을 높이는 노력도 빼놓을 수 없다.  앞으로 헤쳐나가야 할 과제가 산더미다. 그렇지만 희망을 갖고 앞으로 나아가자. 멀지 않은 미래에 국민의 인권이 중심이 되는 새로운 형사사법체계가 작동하고, 그 안에서 당당한 모습 으로 일하며 신뢰받는 가슴 벅찬 경찰의 모습을 기대해 보자.  광복 이후 1947년 경찰에게 "국민의 경종이 되소셔" 라고 말해 주었던 초대 경무국장 백범 김구 선생이 살아 계시다면 지금의 우리에게 과연 어떤 말을 해주실까? 지난 역사가 새삼 커 다란 울림을 주는 1월이다.國民의 警鐘이 되소셔 白凡 金九 @shaouraav-shreshtha / unsplash이 세상 사람들 모두 잠들고 어둠 속에 갇혀서 꿈조차 잠이 들 때 홀로 일어난 새벽을 두려워 말고 별을 보고 걸어가는 사람이 되라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되라   정호승,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되라'에서 @javardh / unsplash仁 자애 X 경찰 모두가 주인공 경찰관은 공무원 신분이지만 일반 공무원과는 질적인 면에 있어 차별화된 업무를 수행한다. ‘서류'를 중심으로 사무실 내에서 업무를 하는 일반 공무원에 비해 경찰은 ‘사람 중심의 업 무를 통해 24시간 국민과 접촉한다. 때로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주기도 하고 때로는 강제력을 통해 권리를 제한하기도 한다.  경찰의 일은 흔히 '사람의 인생 속으로 들어가는 일'이라고 한다. 한 생명을 살리기도 하고, 한 생명을 지키지 못한 안타까움에 밤을 지새우기도 하고, 끈질긴 추적 끝에 범인을 잡고도 피해자가 겪은 아픔에 함께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시민을 대신해 부여 받은 권한을 집행하면서 시민과 인연의 끈을 잇게 된다.  얼마 전, 아직 세상에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와 소중한 인연을 맺은 경찰관의 사연이 유튜브를 통해 화제가 되었다.  임신 12주차인 산모가 하혈을 하고 배에 통증을 느껴 가까운 산부인과에 갔지만 의사는 양 수가 샌다며 큰 병원으로 가라고 권유했다. 위급함을 느낀 아이 아빠는 안성에서 분당에 있는 큰 병원으로 가려고 이동하던 중 교통정체로 지체되고 운전석 옆 산모는 통증과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된다. 다급한 마음에 112에 전화해 상황을 설명하고 "가능하면 순찰차로 에스 코트를 부탁드린다."고 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순찰차가 산모 차량을 발견하고 고속도로 진입까지 에스코트를 해주었고, 고속도로에서는 교통순찰차량의 에스코트를 받아 신속하게 병원에 도착하였다. 다행히 빠른 치료로 산모와 아이 모두 무사하였다고 한다.  설 연휴였던 27일에는 부산의 한 파출소에 70대 택시기사분이 찾아와 "도와달라"고 말을 한 뒤 갑자기 쓰러져 의식을 잃은 위급상황이 발생했다. 이때 파출소에 있던 경찰관들은 평소 교육 받은대로 심폐소생술(CPR)을 실시하면서 119구급차가 도착하기까지 5분 동안 기사 분을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이후 119구급차에 의해 병원으로 후송되고 현재는 의식을 되찾고 치료를 받고 있다고 한다.  함께하는 인권경찰경찰차가 유산 위기 여성이 탄 차량을 에스코트하는 장면(왼쪽)과 여성의 남편이 경찰관에 감사인사를 하며 올린 태아 사진  긴박한 상황 속에서도 시민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기꺼이 기적을 만든 경찰과 이에 협조해 준 시민들의 이야기는 모처럼 살맛나는 세상을 느끼게 해주었다.  매년 크고 작은 사건이 끊이지 않는다. 경찰은 발 빠른 수사를 통해 신속히 범인을 잡기도 하지만 그 처리 과정에서 국민들로부터 질타를 받기도 한다. 그때마다 경찰은 잘못한 것이 없다고 항변할 수 있겠지만 "나와 가족의 생명과 재산을 대신해서 지켜달라"고 권한을 부 여해 준 시민의 입장에서 보면 경찰이 제 역할을 했는가 의문을 가질 수 밖에 없다.  수사권조정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였다. 견제와 균형을 통한 선진 형사사법체계가 갖추어 지는 초석을 마련했다고 보여지지만, 경찰의 권한이 확대된 만큼 경찰개혁에 대한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경찰 활동은 권리가 아니라 권한이다. 권한은 내가 아닌 타인을 위해 발동하며 그 자체로 한계를 갖는다는 의미에서 권리와 다르다. 우리는 권한을 권리로 인식하여 남용 하기도 했다. 경찰은 시민의 한 사람이자 실체화된 국가로서 본인의 행위가 국민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어떤 결과를 낳을지 생각하고 행동에 옮겨야 한다.  자신에게 있을 수 있는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묵묵히 임무를 수행한 경찰관이 결국 한 생명을 살리는 '기적'을 일궈낼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일을 하고서도 묵묵히 할 일을 했노라 말하는 경찰관, 그런 경찰관이 이 세상을 지켜주는 히어로이자 수사권 조정을 일궈낸 주인공이다.  글. 박원식 인권보호계장  함께하는 인권경찰1월 초대글  세상에 질문하는 법 경기북부 가평경찰서 수사과 김영철 경위  사람에게 질문을 해야 하는 직업을 가진지라 어떤 질문을 하느냐가 늘 고민일 수 밖에 없다. 어떤 질문은 사람으로 하여금 입을 닫게 하고 어떤 질문에는 사람들이 스스로 입을 연다.  질문 중에 최악은 오직 내가 얻고 싶은 것을 얻기만 하겠다는 뜻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질 문이다. 이는 질문을 하는 사람의 태도와도 관련이 있는데 대화[경찰관의 질문이 대화인지 는 약간의 의문이 있다]를 하는 상대를 존중하지 않고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려고 하는 태도 역시 최악이 아닐 수 다. 이런 경우 자신의 뜻과는 상관없이 상대와의 사이에 벽을 쌓기만 할 뿐이다.  사건 현장에 갔을 때 그 사건을 목격한 사람이거나 또는 관련자에게 내가 묻는 방식은 “무슨 일이 있었나요”와 같이 상대를 규정하거나 비난하지 않는 식이다. 사람들은 편견이 들어 있는 질문에 저항을 하기 마련이다. 입을 꾹 닫거나 적대감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말이다. 이를 피하기 위해서는 중립적인 질문을 해야 하는데 그중 하나가 "무슨 일이 있었나요"와 같은 질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왜 그랬어"와 같은 질문을 하기도 하는데 이 짧은 질문에는 '네가 그 일을 했고, 그 일은 잘못됐다.'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아직 아무도 누가 그 일을 했는지, 그 일이 비난 받을 일인지,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던 사정이 있었는지를 모르고 있 는데도 "왜 그랬어"라고 묻는 것은 일을 꼬이게 만든다.  오래전 읽었던 글에 이런 구절이 있었다. 그 구절이 쓰여 있던 책의 제목이 무엇인지, 작가가 누구였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 구절만은 아직도 또렷이 기억이 난다. 아주 작고 이제 대여섯세 쯤 됐을 아이는 이런 말을 했다. "어른들은 왜 내게 노란 나비를 좋아하는지 묻지 않죠. 왜 매번 몇 살이냐고 묻는거죠"라고.  그 작은 아이가 누구인지를 알려주는 것은 그 아이의 나이가 아닐 것이다. 노란나비를 좋아 하는지, 아침을 좋아하는지, 저녁을 좋아하는지가 그 아이가 누구인지를 더 잘 설명해줄 것 이다. 우리는 매번 나이가 몇 살이냐고 묻는 어른들처럼 본질을 인식하기 위해 필요한 질문 들은 요리조리 잘도 피해다닌다. 그것도 재주라면 재주일테지만.  파출소에서 근무하던 때였다. 한번은 옷을 허름하게 입은 할머니 한분이 돌아다니고 있다는 신고를 받았다. 늦가을이었던지라 노인이 혼자서 다니기에는 바람도 꽤 찼다. 신고를 한 사 람은 식당을 운영하던 사람인데 배가 고파보이는 노인에게 식사를 권했음에도 그냥 가겠다고 하고 사라져 버렸다고 했다. 순찰차로 동네를 두어바퀴 돌았을 때 그 노인을 발견했는데 노인은 개울가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크고 작은 돌들이 널려 있는 곳이라 젊은 사람도 걷기 불편한 곳에 노인네가 어찌 들어갔을까. 순찰차를 한쪽으로 세워놓고 한참을 걸어 노 인쪽으로 갔다. 노인은 어디서 구했는지 플라스틱으로 만든 냄비에 개울에 흐르는 찬물을 떠 라면을 넣고 불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함께하는 인권경찰@crstian-newman /unsplash이름이 뭐냐, 어디서 사느냐, 자식 이름이 뭐냐라고 물었지만 대답이 없었다. 찬물에 담근 라면은 도대체 불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신고자 말로는 식사를 권했다고 하는데 배가 고팠을텐데 왜 식사를 하지 않았을까. 여기는 춥고 위험하니 밖으로 나가자고 권했다. 나가서 밥을 사드릴테니 라면은 버리자고 해도 냄비를 뺏기지 않으려 단단히 붙잡고 있었다. 어찌 해야 하나 한참을 신랑이를 벌였지만 노인은 요지부동이었다. 계속 이렇게 있을 수는 없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날은 더 차가워졌다.  라면을 찬물에 불려서 먹으려 하는 것으로 보아 배가 고팠을 노인이 신고자의 식사권유를 거절한 까닭은 어쩌면 자존심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찌해야 할까. 결국 꾀를 하나 내 노인에게 이렇게 말했다. "할머니 저 아직 밥을 못 먹어서 배가 고파요, 여기 계시면 제가 식사를 못하니 나가서 밥 같이 드세요, 라면은 버리자구요." 그렇게 말하고 할 머니의 냄비를 빼앗아 쏟아 버렸다. 몇 번인가 더 내가 배가 고프다고 너스레를 떨어 겨우겨우 노인의 손을 잡고 개울을 건넜다.  노인을 파출소로 모시고 와 짜장면을 시켰더니 얼마나 배가 고프셨는지 밥을 빨리 먹는 버 릇이 든 나보다 더 빨리 그릇을 비웠다. 담배를 피우시냐고 물어 한갑을 통째로 노인에게 건네고, 결국 노인이 관내에 있는 가까운 시설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시설에 연 락을 했고 약간의 치매끼가 있어보이는 그 노인은 다시 시설로 가게 되었다.  그 노인에게 밥을 사드리겠다고 했다면 어땠을까. 그 노인이 내 손을 잡고 개울을 건넜을까. 아마 힘들었지 싶다. 약간의 치매끼가 있었음에도 다른 이에게 신세를 지고 싶지 않아 생라 면을 찬물에 불리고 있던 분이었으니 말이다.  "할머니 저 배고파요. 여기 계속 계시면 저도 밥을 못먹어요. 저 밥먹어야 하니까 나가서 같 이 드세요.” 이 말은 내가 노인에게 밥을 사드리는게 아니라 혼자 밥먹기 싫으니 같이 먹자는 뜻에 더 가깝다. 노인에게 내 말이 그리 들리라고 한 말이었다.  누군가에게 질문을 하는 일, 누군가에게 내 뜻을 말하는 것, 그게 내가 하는 일이다. 다행이 사람들이 하는 말을 잘 알아 듣는 편이고 관계에 예민한 탓에 질문하고 말하는 것이 크게 힘들지는 않다.  나는 말하는게 좋다. 질문하는게 좋다. 대답을 듣는 것, 간절한 사람들의 말을 듣는 것도 좋다. 그러면에서 나는 내 직업이 좋다.  (#소식지에 담을 여러분의 글과 사례 등 다양한 인권 이야기를 기다립니다. 다양한 이야기를 소개해 주세요.)  함께하는 인권경찰認 알다 X 문화 문화로 보는 사람이야기 : MOVIE 신의 은총으로 프랑소와 오종, 2019  얼마 전, 신년미사를 마치고 군중들과 인사를 나누던 교황이 불같이 화를 내는 장면이 뉴스 를 탔다. 교황과 악수하기 위해 늘어선 군중들 사이에서 한 여인이 교황의 손을 무례하게 낚아챘기 때문. 이 모습이 호사가들의 입에 오르내리자 교황은 다음 날 사과의 메시지를 냈다.  "우리는 자주 인내심을 잃으며 나조차 그렇다. 어제 있었던 나쁜 본보기에 대해 사과한다."  성의를 입고 있지만 알고보면 교황도 나약한 인간이다. 제례를 주관하는 제사장에게 신성을 기대해서는 안될 터. 성직자는 보이지도 들리지도 만질수도 없는 신의 섭리를 대리하는 존 재일 뿐이다. 우리는 곧잘 그 사실을 잊곤 한다.  화도내고 실수도 하는 존재지만 교황(사제)이 위대해 보이는 건 법관이 위대해 보이는 이유와 크게 다르지 않다. (연혁적으로도 두 직업은 뿌리가 같다.) 사제의 권위나 법관의 권위는 역 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거대한 조직과 그 조직에 집중된 권력에서 나온다. 모든 사람이 우러러 보는 곳에 올라앉아 법복과 성의에 가려진 채 실존의 불안함을 견뎌내야 하는 사람들이 법 관과 사제들이다. 그들의 권력은 인간이 만들어 낸 제도와 신념의 착시위에 쌓은 모래성이다. 그나마 법관의 권력은 견제를 받지만, 사제의 권력은 그렇지 않다. 사제를 의심하는 것 자체가 종교적 불경이 될 수 있기 때문. 종교는 심판의 공포위에서 세를 확장하고 종교인의 범죄나 부정부패는 어떠한 견제도 받지 않는 토양위에서 독버섯 처럼 자란다.  함께하는 인권경찰영화 〈신의 은총으로〉는 카톨릭이라는 거대한 권력과 싸우는 사람들의 실화를 다뤘다. 프랑스 리옹 교구에서 청소년 사목활동을 하던 프레나 신부는 197~80년대 70여명의 보이 스카웃 단원들을 성추행한다. 충격적인 경험으로 인생이 망가진 사람들도 있지만 아이들의 상처는 거대한 교회의 권위에 덮혀버렸다.  30년의 세월이 지난 어느날, 피해자 알렉상드르는 자신의 아이들이 프레나 신부와 접촉하는 것을 알고 충격을 받는다. 과거의 상흔을 들추어내는 것 조차 "신의 규범"으로 왜곡해버리는 보수 카톨릭 교단과 맞서 싸움을 시작한 그에게 선뜻 손을 내미는 사람은 없다. 내용이나 구도가 얼핏 영화 〈스포트라이트)와 흡사하지만 언론인이라는 신분을 가지고 카톨릭 교단의 추문을 파헤치는 것과 평범한 일반인의 악전고투를 비교할 수는 없다. 영화 〈신의 은총으 로〉는 철저하게 고립된 피해자들이 서로 연대하면서 진실과 정의에 접근해가는 이야기다.  영화는 각자 다른 삶을 살아온 세명의 피해자를 순차적으로 보여준다. 피해자들은 묻어두고 잊버버리려 하다가 마음을 바꾼다. 서로의 용기를 발판삼아 진실의 담장위로 올라선 그들 에게 카톨릭 교단이 내세우는 위엄과 권위는 구토가 나올 정도로 추하다. 도과된 공소시효 조차 "신의 은총"이라고 표현하는 추기경의 모습에서 "성공한 쿠테타는 무죄"라고 면죄부를 주었던 이 땅의 법조계(정확히 말하면 검찰)를 떠올렸다면 내가 지나친 걸까. 카톨릭이든 그 어떤 절대화된 종교집단도, 아니 사법부나 검찰이나 마찬가지다. 도를 넘은 권력들은 스스로의 질서를 지키기 위해 서슴없이 진실을 왜곡한다. 그 왜곡은 때론 신앙이 라는 이름으로, 때론 법치주의확립이라는 이름으로 합리화된다. 우리는 그것을 알면서도 묵인한다. 맞서 싸워 입게 될 상처가 너무 크기 때문. 그러나 언젠가는 그 진실이 폭발하고 권력은 무너지게 된다는 걸 역사는 증명한다.  MOVIE 함께하는 인권경찰"그래도 신을 믿으세요?" 영화의 말미, 주인공 알렉상드르의 아들이 내뱉는 대사는 영화가 보여준 모든 불의와 부정을 한입에 삼켜버린다. 나는 이 말이 "언제까지 부정의한 질서를 믿으실건가요?"로 들렸다. 스스로의 권력에 도취된 채 진실을 은폐하는 제도와 견제받지 않는 권력을 무작정 따라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검찰개혁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이뤄나가는 우리들도 이 근본적인 질문 앞에 답변을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  글. 이준형 경감  MOVIE  함께하는 인권경찰문화로 보는 사람이야기 : BOOK 새해맞이 서점(書店) 산책 후기   독서 후기는 일기와 흡사하면서도 다르다. 신변잡기와 감정의 편린을 몇 줄의 글로 다독이는 행위가 일기라면 독서후기는 해를 거듭할수록 느슨해지는 기억력 때문에 틈틈이 공들여 읽은 책의 내용과 감상을 허무하게 날릴 수 없어 기어이 서툰 기록을 남기는 행위다. 가상의 독자를 의식할 수밖에 없는 글쓰기라는 점에서도 독서 후기는 일기와 다르지만 둘 다 자기 위안의 한 방편이라는 점에서 또 흡사하다.    월말이 되면 소식지 담당이신 문은영 학예사님으로부터 후기 독촉을 받는다. 한 달에 두서너 권 정도 읽고 정기적으로 독서 모임을 하지만 독서 후기를 쓰는 책은 많지 않다. 게으른 사람이 무언가를 꾸준히 하기 위해서는 감시와 채근이 빠질 수 없는 법. 늘 후기의 압박에 시달리면서도 <마주>라는 제목의 인권 소식지를 만든 죄값(?)을 치른다는 생각으로 학예사님의 독촉을 묵묵히 듣는다.   최근에 읽기 시작한 앙드레 말로의 <희망>은 등장인물이 많고 너무 방대하여 다 읽고 나서도 쓸 엄두가 나지 않으니 새해 첫날 읽은 황윤 감독의 <사랑할까 먹을까 ; 어느 잡식가족의 돼지 관찰기>나, 적당히 재미있고 적당히 교양있는 김영민 교수의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에 대해 쓸까 고민하다가 최근에 나온 신작을 골라 읽고 쓰는 것도 좋은 방법이겠다 싶어 주말에 서점 나들이를 했다. 후기 독촉을 받은 사람이 나뿐만이 아니었는지 주말 서점은 백화점만큼이나 복잡했다. 신간이 사람들의 눈에 띄기 위해서는 입구 근방에 누워있어야 유리하다. 사람들이 많이 찾는 베스트셀러 코너나 중고생 참고서 분야 서가로 가는 길목에 ‘새로 나온 책’이라고 적힌 작은 배너와 함께 단체로 누워있으면 효과가 더 좋다. 새 책 코너는 꼭 사서 읽지 않더라도 시대의 흐름을 읽는데도 요긴하다.   시선이 이끄는 대로 신간 코너에 걸음을 멈추고 한 권씩 제목을 스캔하는데 책 제목들이 한결같아 흥미롭다가 진로 고민에 한껏 위축된 아들 생각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게으른 게 아니라 충전 중입니다 댄싱스네일, 2019  제 인생의 답이 없어요 선바, 2019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 데이비드 시버리, 2018  지쳤거나 좋아하는 게 없거나 글배우, 2019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 하완, 2018  오늘은 이만 좀 쉴게요 손힘찬, 2018  제목에서 풍기는 관조적, 초월적 삶의 자세가 책의 표지에도 그대로 드러난다. 표지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무표정으로 누워있거나 이불속에서 목만 뺀 모습이다. “독서에 미쳐라”, “영어에 미쳐라.” “주식에 미쳐라”와 같이 한 분야에 몰입을 권하던 책들이 서가를 채웠던 나의 청년기가 떠올랐다.  BOOK  함께하는 인권경찰아이엠에프 사태(1997)와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 후폭풍(2007)은 정확하게 10년의 텀을 두고 우리를 습격했다. 강한 외부의 충격에 혼미해진 청년들은 살아남기 위해 모든 열정을 쏟아내야 했다. 서점에는 <아침형 인간>(2003), <성공하는 사람들의 일곱 가지 습관>(2003년 개정판)과 같은 책들이 불티나게 팔렸고 세기말부터 지속되어온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1997년) 열풍은 주식시장과 부동산 시장을 뜨겁게 달구었다. 그러나 모두가 성공할 수는 없는 법. 열정의 끝은 상처였다. 기성 세대들은 <아프니까 청춘이다>(2010)라며 위로하려 했지만 청년들의 깊은 상심을 위무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십 년이 흘렀다. 청년이라는 명찰을 다음 세대가 물려받았지만 세상은 더 혹독해졌다. 열정도 ‘노오오력’도 통하지 않는 세상에서 청년들은 스스로를 위로하기 시작했다.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2018)와 같은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절망적인 세상에서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는 건 소확행(작지만 확실한 행복) 뿐일 터. 지금 청년들은 가혹한 성공지상주의, 승자독식의 법칙이 지배했던 아비 세대의 죄값을 치르는 중인지도 모른다.   후기를 쓰기 위해 서점산책을 나섰다가 한 권도 고르지 못하고 서점을 나섰다. 마음만 무거운 산책이었다. 어떤 책의 후기를 쓸까 다시 고민하다가 이 무거운 산책의 후기를 쓰는 편이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라도 이 글을 읽는 분이 있다면 같은 시대를 통과하는 청년의 아픔을 나누고 싶었다. 이게 새해 첫 독서후기 대신 서점 산책 후기를 써 올리는 이유다. 책 표지만 보고 후기 썼다고 뭐라고 하시면 안 된다.  글. 이준형 경감  BOOK  함께하는 인권경찰문화로 보는 사람이야기 : ART 평범한 진실 _ 귀스타브 쿠르베  1819-1877 안녕하세요 쿠르베씨, 1854년그림 속에는 세 명의 사람이 등장한다. 가장 오른쪽에 있는 소박한 등산복 차림의 사람이 화가 쿠르베다. 그림 도구가 든 가방을 멘 채 인사를 받는 모습이 거만해 보이기도 하지만 화가의 자신감으로 볼수도 있다. 그림 속 거만한 쿠르베에게 경의를 표하는 이는 다름 아닌 그의 그림을 꾸준히 구매해 온 후원자 알프레도 브뤼야스이다. 쿠르베는 브뤼야스가 사는 남프랑스 몽펠리에를 여행하면서 이 그림을 그렸다. 밋밋한 시골길을 배경으로 중앙에 인 물을 크게 묘사하여 두 사람의 관계에 더 눈이 간다.   이 작품은 1855년 파리만국박람회에 [만남]이라는 제목으로 출품되었다. 당시 사람들은 그림 속 화가의 모습을 비웃으며 ‘안녕하세요, 쿠르베씨’ 라는 제목으로 불렀다. (사실주의 작품을 낮게 보는 당시의 경향을 엿볼 수 있다.) 평범해 보이는 이 작품은 당시 많은 이들 에게 충격을 주었다. 당시에는 역사 속 인물, 성경, 초상화 등이 그림의 주제였는데 쿠르베는 그러한 공식을 파괴하고 평범한 일상을 그렸기 때문이다.   "내게 천사를 보여주면 천사를 그려주겠다."  상대적으로 볼품없는 현실을 그렸던 쿠르베지만 사실 그는 부유한 집 안에서 태어났다. 남 부러울 것 없이 낭만과 이상을 좇으며 살아가도 되는 환경이었지만 그는 부르주아의 삶을 택하지 않았다. 부르주아답지 않은 소박함은 쿠르베만의 예술 기조를 형성하는데 아주 중 요한 역할을 했다. 쿠르베는 당시 주류 미술계와는 달리 농촌의 비참함을 이상화하지 않고 적나라하게 묘사했다. 이러한 작품 경향은 당시 미술계에 커다란 충격을 주었으며 혹평 역시 피할 수 없었다.   하지만 쿠르베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 힘겹고 암담한 현실을 사는 사람들을 그리며 그 속에 보이는 진실을 보여주고자 했다. 누추한 노동자들, 몸집이 큰 부인들을 그리며 관습에 저항한 것이다. 불편한 현실을 그린 쿠르베는 19세기 프랑스 혁명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 였으며, 나폴레옹 3세의 제2 제정에 반발해 레지옹 도뇌르 훈장*도 거부했다. 이후 프랑스 정부가 파리 코뮌을 진압하자 방돔 광장의 조형물을 파괴했고 그 이유로 투옥된다. 결국, 전 재산을 몰수당한 채 스위스로 망명해 쓸쓸히 생을 마감했다.   "나폴레옹 당신이 왕관을 쓰는 장면도 중요하지만, 우리의 평범한 일상도 중요하다." 라고 말한 화가는 비평가와 후견인을 두려워하지 않고 다른 사람이 관심 두지 않았던 것을 거침없이 기록한 사실주의의 대표적 화가로 평가받고 있다.    *레지옹 도뇌르 - 프랑스 최고 권위의 훈장으로 1802년 나폴레옹 1세가 전장에서 공적을 세운 군인들에게 수여할 목적으로 처음 제정했다. 정치·경제·문화·종교·학술·체육 등 각 분야에서 공로가 인정되는 사람에게 대통령이 직접 수여한다. 특별한 공적 자체를 표창하는 대부분의 훈장들과 달리, 영예로운 삶을 산 인물에게 수여되는 성격이 강하다. 따라서 평생의 영예로 인정되는 훈장이며, 수여된 이후에도 명예를 지키지 못하면 취소된다.  함께하는 인권경찰경찰청 인권센터는 소식지에 담을 여러분의 글과 사례 등 다양한 인권 이야기를 기다립니다. 삶 속에 다양한 이야기를 소개해 주세요. (보내주신 원고는 소식지에 담을 예정입니다. 채택된 원고에 한해 소정의 상품도 드립니다^^)  전·현직 경찰의 인권 관련 소장품도 받고 있습니다.  인권센터 : 문은영 학예연구사 saddy0412@police.go.kr